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해하며 맞이한 5월은 근로자의 날(1일)을 시작으로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가정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과 같이 가족에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그리고 15일은 ‘스승의 날’이고, 19일은 이번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이 3년이 지나면 맞이하게 될 ‘성년의 날’이며, 25일은 재해 예방을 위한 ‘방재의 날’, 31일은 세월호가 깊게 잠겨 있는 ‘바다의 날’입니다.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게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실종자가 2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선원들이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는지,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왜 방관만 하고 있었는지, 구조작업은 왜 느리게 진행되었는지, 이러한 모든 일들에 대해 국민들은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언론은 취재 경쟁만 벌이며 진실이 아닌 내용이 많은 정부의 발표를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해 국민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어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참사의 진행 상황을 보며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도 높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말은 영어 격언으로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The nobly born must nobly do).”로 표현이 되며, 사회지도층 사람들이 일반 대중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때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의 주제로 여겨지고 있는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은 인간의 주요 본성 중의 하나로 그 본성의 DNA(유전자)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발현이 됩니다.

기업인에게는 최고의 기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싶은 DNA가, 공직 선거 출마자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선되고자 하는 DNA가, 그리고 관료들에게는 고위직에 오르고자 하는 DNA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이때 노블레스 DNA를 조절해주는 오블리주 DNA의 활성이 약해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국정에서 노블레스의 주체가 대통령과 고위관료들이라면 세월호와 같이 항해 중인 선박의 노블레스는 선장과 기관사, 항해사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위기의 상황이 발생하면 지켜야 할 오블리주가 있습니다.

이번 침몰 사고에서 “내가 살아야만 하겠다고 생각하며 탈출했다.”고 말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만 하는 오블리주를 저버린 것입니다.
이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비 노블레스 DNA가 발현되어 나타난 결과라 생각됩니다.

베트남전쟁을 무대로 한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의 파병 환송식에서 지휘관인 할 무어 중령은 참전 장병들에게 “우리는 전장이라는 죽음의 그림자 계곡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전장에서 제일 앞서 싸울 것이며, 물러날 때는 마지막까지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든 살아서든 함께 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영화의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이번 참사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발휘했어야 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요.

그동안 고위관료 임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불법적 재산축적이나 자식의 병역문제 등의 도덕적 해이가 우리 사회에 불신을 키워 왔습니다.

지난해에 발생한 원전 사고 때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최근에는 ‘관피아(관료+마피아)’, ‘해피아(해양+마피아)’라는 말들이 유행하며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주체들은 사회적 의무에 대해 솔선수범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방임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마피아적인 행태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월호 참사 후 64지방선거 이슈로 ‘창조경제’를 제치고 ‘안전’이라는 구호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노블레스가 되기 위한 ‘공약(空約)’의 남발이 아닌 진정한 사회 안전과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공약(公約)’이 제안되고 그것의 실천 방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블레스 선출 과정에서 학연이나 지연을 벗어난 선거권자들의 진정한 오블리주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감정은 바로 오블리주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최근 모 방송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안전 낙제국이라는 응답자가 9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는 과연 몇 %가 안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사회 전반에 펼쳐져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국정의 기본적인 오블리주입니다. 정부는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고쳐나가면서 아름다운 사회 공동체의 마련에 앞장서야 합니다.

온 국민이 비통해하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빨리 끓었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 조상의 정신이 반영된 ‘가마솥 문화’로 가는 계기 마련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금이 바로 정계를 위시하여 법조계, 의료계, 산업계, 교육계, 학계 등은 물론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냄비 정신에서 벗어나 가마솥 정신으로 재무장하여 사회 안전과 복지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개선하고, 무너져 내린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소수 계층의 선행만 환대를 받고 평범한 사람의 봉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오블리주가 특정 계층에 한정된 의무가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일상적인 삶에서 실천하고 공유해야만 하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불의의 사고로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기를 빕니다.

그리고 이번 참사를 거울로 삼아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부도덕에서 정직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기(利己)에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환되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사회 전반에 정착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