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이은 일왕의 사과 관련 발언 이후 양국 간에 전개된 상황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국교 정상화 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양측은 이런 상황을 두고 서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있어 두 나라 관계가 정상적인 이웃 관계로 회복되기에는 상당한 시간뿐 아니라 이를 타개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관계를 꼬이게 하는 것은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입니다. 최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서 드러나듯 일본은 역사 문제에서 점점 더 국수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한편 영토 문제에서도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의 추이는 동북아에 커다란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에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다져놓아야 할 미국으로서는 이 시점에서 이웃 나라들을 분노하게 하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행보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입니다.

종래에는 한국이 지나치게 비타협적이어서 한미일 공조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인식해온 미국은 이제 제일의 동맹국인 일본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동북아 역사 문제에서 일본의 행태를 못마땅해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한일 간 갈등의 핵심 사안인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상의 모순을 노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못지않게 일본의 독 도영유권 주장이 한일관계 진전의 걸림돌이 되어왔음을 미국은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과거사 문제는 결국 인식의 문제로서 우리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깊게 하는 것이지만 독도 문제는 영토라는 핵심적 국익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독도 문제에 관해서 미국은 뒷짐을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은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에 입각한 전후 처리에서 독도를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와 함께 당연히 한국에 귀속되도록 한 당초의 입장(1946년 연합국사령관 각서 677호)을 변경하여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독도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강화조약 체결 과정에서 한국을 무시하고 일본의 입장에 동조한 결과였으며 미국 나름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시 독도를 스탈린 영도 하의 공산진영에 빼앗길 경우 향후 일본 방위에도 불리해진다는 전략적 사고를 수용하였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책임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세기 초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 러일전쟁(1904~1905) 종반에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를 마음 놓고 침탈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런 국제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본은 은밀한 방법으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것입니다.

일본의 독도 침탈은 직접적으로는 대 러시아 전략적 이해에 따른 것이지만 동시에 본격적인 한반도 영토 강탈의 시작이었습니다.

전후 처리를 하면서 원칙을 벗어나 일본이 반환할 영토에서 독도를 누락한 것이 결국 오늘날 한일 간 독도 영유권 문제의 불씨가 되었다고 보면 미국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와 관련해 과거의 책임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이 문제가 더 이상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임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폴란드가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일의 영토 일부를 할양받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가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일본으로부터 적어도 대마도 정도를 할양받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독도 문제가 한일 관계와 나아가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더 이상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둘째 유사시, 예컨대 한반도 급변사태 발생 시 한국의 방위력에 허점이 생길 경우에도 일본이 독도에 대한 여하한 도발을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일본에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임을 미국은 잘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중 샌프란시스코 지역 거주 일본인들을 집단 억류했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보상까지 한 적이 있으므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는 데에 인색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달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