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건축학회에서 만든 '건축물 내진설계기준'으로 안해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의 동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토목쪽에서는 건축 쪽이 건축물 내진설계기준에 토목시설을 대거 포함하면서 토목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건축쪽에서는 해당시설들이 건축법에 의해 건축물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해외와 달리 국내는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 법체계를 따르면서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이 분리되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토목엔지니어(Civil Engineer)가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고 설계한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건축공학분야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의 시스템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한국은 일본과 또 다른 시스템이다. 일본은 건축학과에서 공학과목을 모두 배운다. 즉 건축이 건물에 대해서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2000년대 초까지는 일본과 같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건축학과 건축공학이 분리되었다. 건축학은 5년제로 주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건축공학은 4년제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시스템으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분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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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 건축공학을 분리한 것은 국제기준에 맞춘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해외에서 건축은 예술대에 속해있어서 예술가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지난 아직도 건축학과 건축공학을 분리하지 않은 학교도 많다. 

건축학과 분리된 건축공학은 주로 구조공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건물의 안전검토 분야나 건축시공 분야로 취업한다.

건축공학과에서 배우는 구조공학의 뿌리는 토목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건축공학과 구조공학교수들은 대부분  유학할 때는 토목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축공학과 교수들과 토목공학과 교수들은 해외 대학원의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도 많다.

고려대의 경우에는 토목공학과 건축공학과가 하나의 과로 합쳐져 있다. 학문적으로 구분이 무의미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른 것이다.

국내 구조공학 관련 학회는 10여정도 된다. 콘크리트학회 강구조학회, 지진공학회 등이 구조관련 학회 중에서 규모가 있는 학회다.

이 세개의 확회들은 토목쪽과 건축쪽에서 번갈아가면서 학회장을 맡고 있다. 현업에서는 건축산업과 토목산업이 나누어져있지만 학회는 하나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개의 학회 말고도 토목과 건축이 번갈아가면서 회장을 하는 학회들은 몇개 더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내진설계기준과 관련된 학회는 지진공학회다. 겉보기에는 아무일 없어 보이지만 지진공학회 안에서는 지금 업역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업역을 뺐겼다고 생각하는 토목쪽은 부당함을 주장하고 싶어하고, 이미 건축물내진설계기준을 고시하는데 성공한 건축쪽은 방어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양 쪽 모두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교수들이 주축인 학회라는 조직의 특성상 밥그릇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다.

지진공학회 안에서 이 문제를 조율할 생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이 나설 문제는 아니고 어떤 시설이 건축물인지는 정부 부처가 법적으로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동거를 하고 있던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이 이번 건축물내진설계기준 문제로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토목공학과 건축공학 양쪽 진영의 앞에는 세개 정도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지금처럼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뒤에서는 치열하게 업역다툼을 하는 것. 두번째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을 통합하는 것. 세번째는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따로 따로 학회를 운영하는 것. 

이 세개의 선택지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것은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의 통합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의 통합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논의 한 적도 없다. 그동안 문제를 덮고 넘어갔던 것인데 이번 건축물 내진설계기준이 통합논의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물론 토목공학과 건축공학의 통합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학교 학과의 문제, 국가기술 자격의 문제, 건설관련 법과 제도의 문제 등 굵직한 문제가 산적해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이해관계다. 이미 각 분야의 협·단체들이 만들어져있는 상태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특히 국내 건설 물량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각 분야의 관계자들은 이해관계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엔지니어의 역할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엔지니어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한다면 안전한 세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토목공학과 건축공학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맏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밥그릇 싸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양쪽 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허심탄회하게 공개토론을 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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