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원 포천시장>

막걸리는 소박하고 자유로운 한국 서민의 삶과 함께 내려온 술이다.
다시말해 서민의 술이요, 민족의 술인 셈이다.

막걸리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의 벼농사가 자리를 잡은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다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서민 위주의 술로 그 전통이 확립된 것이다.

‘막’은 ‘마구, 함부로, 조잡하다’라는 의미이고, ‘걸리’는 ’거르다‘의 뜻으로 즉 막걸리는 조잡하게 거른 술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을 꼽으라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1907년 일제의 주세령 공포 이전까지 전국에서 360개가 넘는 술이 존재했고, 옛 문헌 기록을 따져보면 전통술의 종류는 1,000여종이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을 대표하는 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막걸리’다. 땀을 흘리고 한사발 들이키는 달콤쌉싸름한 맛의 막걸리는 예부터 농민의 허기를 채워주는 간식이기도 했다.

잘 빛어진 막걸리는 단맛, 신맛, 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적당한 감칠맛과 청량미가 있다.
그래서 막걸리는 입을 당기는 구수한 맛이 있다.

색깔은 젖빛도 뜨물빛도 아니다 젖빛에도 가깝고 뜨물빛에도 가까운 조화의 빛깔’을 띤다고도 한다.

술의 특징적인 요소는 색깔, 향기, 맛(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떫은맛, 짠맛, 구수한맛, 청량한 맛 등), 기능성과 약리성 등을 들 수 있다.

술의 원료인 물, 쌀, 누룩 등이 술맛과 향기를 결정한다.
‘술맛은 물맛이요, 음식맛은 손맛’이라는 속담도 그래서 나온 말이다.

한때 “막걸리는 포천”이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 말은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아있다고 본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 포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에 대규모 부대가 주둔하는 군사도시가 되었고 그에 맞추어서 1950년대부터 이동막걸리를 필두로 해 일동막걸리, 내촌막걸리, 포천막걸리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군납이 오랫동안 이뤄져 왔다.

그리고 이것이 포천막걸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일반 소비자들 특히 50대 이상으로 포천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이 포천에 들렀다가 그냥 지나쳤을 때는 다시 돌아가 포천막걸리 몇 병을 구입해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포천막걸리는 심지어 제주도나 중국에까지 그 명성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이 당시 포천막걸리를 인근 지역, 특히 서울지역에 몰래 유통시켜 큰돈을 번 사람도 여럿이 있었다고 한다.

포천막걸리가 이름을 얻게 된 경위를 좀 더 살펴보면 포천은 산이 높고 깊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이 포천에 이르러 1,000m 안팎의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운악산을 빚어 놓았다.

이 산봉우리들 때문에 포천으로 들어오는 물은 없고, 포천에서 나가는 물만 있다고 한다.
물이 더럽혀질 여지가 적다는 소리다.

게다가 포천은 휴전선과 가까운 군사보호구역으로 큰 공장들이 없어서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아 공기까지 맑으니, 술맛을 결정짓는 좋은 물과 맑은 공기의 고장으로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고루 갖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50~60년대에 포천은 나라 안에서 군인이 가장 많이 집결해 있던 곳으로, 훈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장병들이 거쳐갔다.

고된 훈련끝에 막걸리 한사발은 얼마나 달콤했겠는가?
흙먼지 속에 땀방울을 흘려가면서 벌컥벌컥 들이키던 그 술맛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 뒤로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군내 시절을 되새길 때면 막걸리 얘기를 빼놓지 않고 하게 됐다.

그렇게 회자되면서 포천막걸리가 유명해졌고 1995년 살균막걸리의 판매규제가 해제되면서 포천막걸리는 다른 지역의 막걸리보다도 앞서 서울과 전국 시장을 공략하여 인지도를 더욱 넓혀 나갔다.

군부대 스토리를 통한 감성을 자극하며 국내 막걸리산업의 중심에서 막걸리 저변확대에 기여했던 포천막걸리는 (주)이동주조를 중심으로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등지로 수출 영역을 확대하며 우리나라에 막걸리 중흥기가 오기까지 막걸리산업의 또 다른 부흥을 선도하며 대한민국 제1의 인지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포천막걸리와 함께 성장한 대한민국 막걸리 시장이 2008년 이후 사회전반에 불어온 웰빙 바람과 소비자의 막걸리에 대한 수요변화(특히 젊은 세대), 정부 및 지자체의 우리술 육성정책에 따라 크게 성장해 왔으나, 2012년 9월 이후 막걸리 소비 트랜드가 정체 내지 감소로 돌아서며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잘나가던 막걸리가 내수․수출 동반 부진의 늪에 빠진 이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양한 개선책과 함께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막걸리산업의 도약을 위해 다시 한번 포천막걸리가 부활해야 할 시기이다.

미래학 분야 최고 석학 롤프옌센은 전 세계가 IT사업에 열풍에 휩싸였던 1990년대 후반 미래학 분야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를 통해 앞으로는 흥미 있는 이야기가 담긴 감성적 관광 상품개발이 관건이 된다고 암시했다.

즉 그것은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로, 상품이 아니라 상품 속에 꿈과 감성을 담은 스토리를 팔아야 하는 사회를 말한다.

바야흐로 이제 상품은 기능보다 개인연출의 도구로서 감성이 결합되어야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물과 맑은 공기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통해 만들어낸 맛좋은 포천막걸리의 1차 도약, 국내막걸리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막걸리 세계화를 주도한 질 좋은 포천막걸리의 2차 도약으로 대한민국 막걸리 산업의 현재를 이끌었고, 50~60년대 군시절 젊음의 꿈과 추억으로 만든 스토리를 담은 감성코드 포천막걸리를 통한 3차 도약으로 대한민국 막걸리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포천막걸리!

대한민국 국민의 꿈과 추억으로 성장한 포천막걸리가 꿈과 추억을 담은 감성상품으로 거듭나고, 나아가 세계인의 꿈과 추억을 파는 브랜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포천막걸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서장원 포천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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