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은 통일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는 통일은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분단 60년동안 북한 인민들은 3대에 걸친 김씨 왕조의 독재 정치에 세뇌되어 남쪽 한국인들과는 쉽사리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의식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제제의 통일은 경제 통일을 전제해야 하고 경제 통일은 정서 통일을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북한 왕조 권력의 붕괴로 인한 갑작스런 통일이 축복이 아니라 민족의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라도 정서 통일을 이끌어 낼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민족 동질성 회복이 가능할까?
안승일은 백두산 사랑에 그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남쪽과 북쪽에서 다 함께 “민족의 성산”으로 떠 받드는 백두산이라는 한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다. 백두산 앞에서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남과 북이 따로 없이 하나로 통일 되어 있는 것이다. (전시도록 20쪽과 21쪽을 보라 . 천지 속의 한반도는 이미 통일이다.)

한민족의 백두산 사랑은 거의 믿음에 가깝다.
배달겨레 누구든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는 순간, 이 땅의 사람들을 오천년 넘게 보살펴온 절대자의 눈길을 느끼고 하늘 목소리를 듣고 흐느끼게 된다.

한민족 정체성의 벼락세례가 거기서 이뤄진다. 그 세례로 그는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하자면 민족사적 시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난다.

백두산은 애국가 속에서도 동해와 더불어 우리 민족을 보살펴 온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솟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백두산은 만주벌 지평선 위에 불멸로 솟아 났다.
천지 수평선 속으로는 물구나무 선채 황홀하다.

끝내 백두산은 한민족 역사에 불멸이다 .
통일의 그 날이 어서오기를 비는 배달겨레 영혼 속에 황홀하다.

와서 안승일의 백두산 사진을 보라. 백두산에서 무르익는 통일의 꿈이 얼마나 황홀한지.

산악 사진가 안승일은 1994년 처음 백두산을 만나 산으로 향한 자신의 운명과 마주쳤다. 그 운명 속에는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영상화 하여 칠천만 배달겨레의 통일 기원 제단에 바치자는 소명 의식이 용솟음 쳤다.

그렇게 하여 그는 생의 절정기 20년을 백두산 사진 작업에 송두리째 바쳐 오늘에 이른다.
수은주가 예사로 영하 30,40도로 곤두 박는 백두산정 눈 구덩이에서 사진 작업 하느라 한 겨울 서너달 씩 버틴다는게 과연 가능한가 말이다.

그것도 20년 씩이나, 그건 신화 시대 곰이 아니고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 사이 간첩 질로 오해 받아 중국 공안에 체포 되는가 하면 죽을 고비를 서너 차례 맞았지만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민족사적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기적에 다름없는 그의 20년 예술혼에 감동받은 아라아트 센터의 김명성 대표는 전시 면적이 1000평에 달하는 5개층의 전시장을 선뜻 내 주었다.

그 덕에 지난 20년간 지속된 안승일의 예술혼이 얼마나 황홀한지를 확인케되어 백두산에 직접 오른 것 이상으로 감동을 즐 수 있는 전시가 가능해 졌다. 실제 천지 물 속으로 백두산정의 16봉우리들이 제 얼굴을 비춰보는 맑은 날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못된다.

백두산에 가서도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맛 볼 기회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제 백두 산행에서 보다 이 전시장 사진 작품들이 더욱 황홀한 감동을 선사 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사진들로 안승일이 백두산에서 산 지난 20년사이 백두산 풍광이 가장 황홀했던 순간과 그 풍경속에서 언뜻 언뜻 내비치는 산의 순백한 영혼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들은 스케일 면에서도 그 불멸의 황홀을 담아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로 15m x 세로 2.3m, 가로 10m x 세로 5m의 작품이 있으며 나머지 50여점도 그 크기가 가로 4m X세로 1.5m이상의 규모다

아라아트 센터의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까지는 중정이 뚫린 건축구조여서 그 속에 전시되는 대형 작품을 시각을 바꿔가며 감상 할 수 있다. 산행 때 걷는 위치에 때라 조망이 달라지듯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아주 특별한 관람 체험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는 20년 집념으로 백두산을 아라아트 전시 공간으로 옮겨왔다.

신화시대의 백두산 곰은 백일동안 마늘만 먹은 끝에 웅녀로 변해 환웅을 배필로 맡아 여기서 단군을 낳았다.
통일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백두산 곰은 백두산을 배필로 맞아 이십년을 함께 산 끝에 여기 전시되는 사진들을 낳았다. 우리는 이 사진들로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민족혼의 영역이다”. 라고 선언하게 된다.

아울러 이 전시회는 정서적 통일 물꼬를 틀어 통일의 전제조건인 민족 동질성 회복에 자신감을 심게 될 것이다.
이 작품들을 보다 많은 국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이번 아라아트 전시회를 전국 순회 전시로 연결 시켜야 하며, 끝내 북녘 땅에서도 전시회가 열려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세대들은 통일 대해 시큰둥하다. 이런 세대에게 이번 전시로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있다면 그들도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뿐만 아니라 애국가를 부를 때 마다 떠올리게 되는 백두산의 숨결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백두산의 존재감에 보다 짙게 육화될 것 이다. 청소년 학생들에게 관람을 적극 권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통일 시대를 살아갈 주역들은 바로 그들이니까.

그는 20년동안 백두산만 찍었다. 자신의 사진에서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는 하늘 목소리가 울려 날 때 까지. 그래서 이 사진 작업에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안승일의 백두산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백두산을 다함께 오르내려보자.
이 순백의 영혼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도록 백두산으로 난 통일의 길을 함께 걷자. 

문의처는 아라아트 기획 전시팀 (02)733-1981, 기획홍보담당 도서출판 숨은길
대표 전사현 010-5337-7999.

<프로필>

[사진작가 안승일]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사진과를 중퇴했다.

십대 후반부터 산사진에 빠져든 뒤로 오늘날까지 50여년의 세월동안 산의안부를 궁금하게 여기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장담할 만큼 오로지 산악사진가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 사이 「한국의 산」사진전 두 차례(1970,1975), 일본사진가 이와하시와 「백두산 2인전」(1994), 북한사진가 김용남과 「백두산 2인전」(1998), 평양에서 두 차례 「남북동공사진전」(2001,2004), 서예가 권창륜과 2인전인 「산과 영과 기」(2011)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山》(1982), 《三角山》(1990), 《漢拏山》(1993), 《白頭山》(1995), 《굴피집》(1997), 《아리랑》(1999), 《高山花園》(2007), 《天上池天下花》(2010), 《白山百花》(2013), 《아직도갈수없는산》(2013) 등의 사진집을 자신의 분신으로 펴냈다.

저작권자 © 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