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우리 언론이 위기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종이매체인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전파매체도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종래의 전통적 개념에서의 언론매체치고 어려움을 겪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사회는 급변하고 언론환경은 격변하고, 독자나 시청자들은 어느새 표변해 수동적인 뉴 스 소비자에서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는 적극적인 언론매체가 되었습니다. 혹시 오해할까 걱정돼 말하자면 표변은 결코 나쁜 표현이 아닙니다. 설명을 덧붙이는 것 자체가 구차하지만 예로부터 군자는 표변(豹變)한다 했습니다.

언론의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제도 있습니다. 중견 언론인들의 연구.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최근 발간한 <한국 언론의 품격>(나남출판)이라는 책자는 한국 언론의 위기와 나아갈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위기의 실상을 점검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진지한 토의 끝에 제작한 책입니다.

발간사(오태규 총무)에서 지적된 위기의 ‘삼각파도’는 1)인터넷과 SNS의 등장으로 인한 전통매체의 산업적 위기 2)1998년 IMF 이래 심화된 ‘경영에 봉사하는 편집’ 풍토 3)갈등과 양극화로 인한 진영논리와 자사 이기주의 등입니다.

이런 세 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언론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공공성을 회복해 공동체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 책에 담긴 문제의식은 진지하고 심각합니다.

논의를 위한 핵심단어로 ‘품격’이라는 말을 설정한 것은 아주 의미 있고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덕목을 아우를 수 있는 정신과 태도에 관한 본질적 문제를 논의해야 마땅한 상황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사의 품질, 기자제도, 언론의 자기성찰, 언론 법제, 편집과 경영의 관계 등 이 책에서 나누어 다룬 문제를 관류하는 게 바로 어떻게 하면 품격을 높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품격은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훈련과 교육에 의해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체득될 수 있고 배양될 수 있습니다.

부문별 논의에서 기자들 개개인의 노력과 자성, 언론 경영자들의 사명감 등 원론적인 점에 더해 특히 강조돼야 할 것은 기자제도에 대한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기자제도는 재건축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유지돼온 공채제도의 폐기, 저널리즘스쿨 도입,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인력 운용제도 정착, 정년퇴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계약제 도입 등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안은 한마디로 기자의 자질을 높이고 기사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경영주가 유능한 인재에게 편집을 맡겨 상호 존경과 신뢰 속에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과도 직결됩니다.

특히 오래 언론계에서 일한 사람들이 경험과 경륜을 사장시키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신문은, 언론은 결국 사람 장사입니다. 사람을 잘 키우고 잘 쓰는 언론사는 아무리 여건이 나쁘고 어려움이 크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조셉 퓰리처가 한 말을 되새기면 기자는 자신의 보수나 주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사명감과 본분이 망각되지 않도록 언론계 내부에서 제도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언론계 외부에서는 공익에 기여하는 기자들이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이 받는 만큼의 신뢰와 존경은 받을 수 있도록 인정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이 잘 되어야 국가와 국민이 잘 된다”는 표어를 내세운 곳(삼성언론재단)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계 외부에서는 기자들을 기피 대상이나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널리즘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한 참여와 노력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각종 매체와 훈련ㆍ교육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기자들의 양산에 따른 언론의 신뢰저하 문제가 덜 부각된 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말과 글의 보호와 발전에 기여하는 글쓰기를 강조하지 못한 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매체와 기자들이 보도인지 해설인지 모를 기사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진영의 논리와 주장에 봉사하는 논평을 쏟아내 기존 언론 판을 더욱 어지럽게 하면서 스스로 논란과 갈등의 중심이 되는 상황에서 언론의 품격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말을 독자들과 함께 읽게 한 것만으로도 관훈클럽이 책을 낸 취지는 충분히 알렸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모바일, 오디오 비주얼 시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매체와 플랫폼에 관계없이, 기사는 글에서 시작한다.

글의 힘을 종교처럼 믿어야 한다.
글만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박재영 고려대 교수)

본질적으로 기자와 언론의 품격은 사실을 다루는 '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언론의 매력이나 권력은 글로부터 나옵니다. 이 평범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고맙게 새로 확인하면서 기자의 존재이유와 본분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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