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대로, 익숙한 대로, 경험한 대로 가지 않는 붓질을 꽤 오랜 시간 지켜보았습니다.

그간 학교에서 배우거나 가르치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캔버스 위에 새로운 길이 개척되어 가는 모습은 퍽이나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의 작업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예술이 보이는 무한한 도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길을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자신의 회화를 이끌어 가는 유일한 방법은 도전과 실험이며 자신은 지금 그것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글/사진=자유칼럼그룹 제공>
끊임없이 변화하며 행위를 가합니다. 규칙적 행위가 반복되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적이며, 작가에게 실험은 열정이고 열정은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작가의 붓놀림은 쉼이 없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는 방법에는 친숙한 것과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조화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림의 밸런스를 맞추지 않기 위해 그림을 멀리서 보지 않으며 오히려 가까이서 그린다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눈에 익숙한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독특함은 결국 그만의 창의입니다.

그는 이미 화단에서 빼어난 재능과 방대한 작업량, 작품성을 인정받는 중견작가입니다. 그의 그림들은 대단히 유니크하고 파워풀합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실험하기 때문에 힘이 있어 보일 뿐이라며 겸손해합니다.

그리고 그는 똑같은 길을 가는 걸 아주 싫어하며, 갔던 길을 다시 쫓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다양한 방법론으로 실험할 용기가 없고 그것을 즐기지 못하면 그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주저하지 않기,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기, 끊임없이 실험하기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도 그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이란 평범하지 않은가 봅니다.

예술가는 그림 속에서 잔을 거꾸로 엎어놓고 커피를 따릅니다. 현실에서는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이라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막대기에 살아 있는 토끼를 매달아 놓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인격의 문제이며 동물학대라고 비난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가능합니다. 그것을 실험할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술가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꿈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며 모험이 필요하고 사고의 전환과 새로운 발상이 필요합니다.

삶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내재된 충동을 끄집어내고 싶어 합니다. 예술가의 예술행위를 바라보는 접점에서 사람들은 영감을 받습니다.

예술은 농사짓고 기계 만드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구조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나 법의 질서를 배우는 학문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면 직장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그 어떤 분야에서든 사고할 수 있는 창조적인 원천 소스를 제공하는 최고의 리더입니다.

자존감이 높지 않으면 예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술은 배불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픈 배를 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맞습니다.
삶의 여가 선용이 아니라 삶의 쓸쓸함을 견뎌내기 위해 원초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이 그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기에 유비무환(有備無患),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여름내 바이올린을 켜던 베짱이를 나무랄 수 없는가 봅니다.

베짱이의 연주 덕에 우리는 더운 여름날의 고단함을 벗어날 수 있었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가슴속 쓸쓸한 우리의 정신을 위로합니다.

<안진의 교수 프로필>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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